애벌레 상태를 포기할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하면 나비가 될 수 있다: 1일1글쓰기-20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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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책리뷰

애벌레 상태를 포기할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하면 나비가 될 수 있다: 1일1글쓰기-202.10.23.

by 찐콕 2022. 10. 23.

[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저자의 글은 어린이 동화같아서 금방 읽었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애벌레더미가 우리가 느끼는 성공을 하기 위한 그 높은 곳을 의미하며 그곳에 오를 필요가 없다는 허무함만 느끼게 했던 책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본 그 책에서는 다른 내용들이 보였다. 줄무늬 애벌레가 노랑 애벌레의 다정한 눈빛에 반했다는 것과 변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랑 애벌레가 고치를 만드는 늙은 애벌레에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만 솜털투성이 한 마리 벌레 뿐인데 내 속과 당신의 속에 어떻게 한마리의 나비가 들어 있다고 믿나요?"-"How can I believe there's a butterfly inside you or me when all I see is a fuzzy worm?"-이라고 말한다. 내 눈에는 너나 나나 그냥 벌레일뿐인데 어떻게 나비가 보이냐는 그 말이 평범한 우리 안에 어떻게 위대한 우리가 될 수 있는게 보이냐는 말로 들린다.



늙은 애벌레가 노랑 애벌레를 보면서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가능한 일이란다."-"You must want to fly so much that you are willing to give up being a caterpillar."라고 이야기한다. 애벌레 상태를 포기해야 날 수 있는 나비가 된다는 글을 읽을때 내가 떠올린 것은 헤르만 헤세 [데미안]이다. 데미안에서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대목은 한 세계를 깨트리고 나가야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다 그것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알에 있던 병아리가 알을 깨지 않으면 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그 알 속에 갇힌다. 하지만 그 알을 깨고 나오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런 느낌의 글이었다. 내 기억 속의 내용을 썼다. 정확한 것은 책을 읽어보길-

변화란 알을 깨는 것이며 애벌레의 외형을 포기하고 날기를 간절히 원할 정도로 큰 것이다. 그 정도의 큰 변화를 이룬다면 알 속의 병아리에서 땅을 딛고 걸어다닐 수 있는 닭이 될 수 있으며 땅을 기어다니던 애벌레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될 수 있다.

평범에서 벗어나 위대해 지고 싶다면 지금 안주하는 세계를 미친듯이 두드려서 깨뜨리고 나비가 될 고치를 온 힘을 다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알을 깨뜨리기 위해서 병아리는 그 안의 에너지를 충분히 먹고 자신의 온 에너지를 쏟아붓고 애벌레도 자신이 통통하게 변화를 겪어낼 정도의 에너지를 모았을 때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외형을 만든다.

에너지가 충분히 모일때, 조건이 갖춰졌을 때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변화를 할 수 있는 게 갖춰졌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건 자신만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잭슨 폴록이 쏟아붓는 페인트로 그림을 그릴 때 이거는 3살 아이들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는 비난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유명해졌다.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그에게 "당신은 이 그림이 끝났는지 어떻게 아나요?"라고 물었다. 그에 그는 "그냥 알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기자는 집요하게 "어떻게 그냥 알죠?"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잭슨 폴록이 " 당신은 섹스가 끝났다는 것을 어떻게 아나요? "라고 기자에게 질문했다. 그 기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그냥 알게 될 것이다. '아 내가 변화할 수 있는 시기구나, 변화가 필요하구나.'라고 말이다. 그때 두려움에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당신은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니 그 변화를 성공적으로 겪어서 위대한 당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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