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 알러지가 발현되면 바로 응급실로 무섭게 가려워진다 :1일1글쓰기-20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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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 알러지가 발현되면 바로 응급실로 무섭게 가려워진다 :1일1글쓰기-2022.10.15.

by 찐콕 2022. 10. 18.

홈쇼핑에서 고구마 2박스를 사게 되었다. 양이 많기도 하고 흙에서 바로 캐서 담아온 것도 아니여서 오래두고 먹기 힘들다는 친구의 조언에 아는 언니집에 고구마를 가져다 주기로 했다.

저녁에 같이 수레를 터덜터덜 끌고 아는 언니집으로 향했다. 언니는 지금 아이 두명을 키우고 있는데 두명 모두 감기에 걸려서 그날 언니는 집에서 아이를 케어하고 있었다. 언니 집 문 앞에서 똑똑 노크를 하니 언니가 막내와 같이 나왔다. 언니는 오랜만에 왔으니 들어왔다가라는 말을 했다.

언니 집에 들어가니 남편과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녁밥이 맛있어 보였다. 언니 집에 가기 전에 고구마를 먹었지만 언니집의 식탁 위에는 하얗고 말랑한 떡국이 만두와 함께 담겨있으며 영롱하게 구워진 양념돼지갈비도 있었다. 언니가 "뭐 먹을래?, 주스 마실래?" 등 먹을거리를 말하고 있어서 나는 "만두 먹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만두를 좋아한다.-뜬금없는 고백- 그런데 튀긴것 보다도 물에 빠진것 보다도 찐만두를 좋아하는데 이건 물에 빠진 것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만두라서 조금 욕심이 났다. 그렇게 언니가 떡이 든 만둣국을 주었다. 나는 맛있게 만둣국도 먹고 돼지양념갈비도 뜯었다. 거기다 밥도 추가로 먹었다. 엄청 든든하게 먹고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씻고 10시쯤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머리가 가려워오기 시작했다. 목뒤도 가려워졌다. 잠시후에는 발목, 배 등 모든 부위가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온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바로 다른 방에서 자는 친구에게로 달려갔다. 친구의 방문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서 열고 전기등의 스위치를 딸깍 눌렸다. 침대 위에서 곱게 이불을 덥고 자는 친구가 눈에 비치자 "친구, 이상해. 너무 가려워. 잠깐만 봐줘."라고 외쳤다.-친구는 이때 내가 너무 해맑게 외쳐서 아침인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서 스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는 잠에 취해 잠시 멍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내 등과 이곳 저곳을 확인하더니 "이거 알러지야."라고 진단을 내린다. 친구는 근처 응급병원을 검색하더니 응급실에 전화를 한다. 병원에서는 일단 오라는 이야기를 해서 밤늦게 택시를 올랐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나는 이 상황이 이상했다. 내가 아파서 응급실을 가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깁스에 이은 두번째 절대 믿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파서 응급실을 가다니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것도 나는 순환기내과에서 알러지 검사를 했는데 어떤 알러지 반응도 안나왔다고 했다. 등판에 40개가 넘는 시약을 찍었던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릿 속에 남아 있는데 알러지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평소에 안 먹던걸 먹었나 고민해 봐도 답이 안나왔다. 평소와 다른 상황은 단 하나였다. 언니집에서 먹은 만둣국과 돼지양념갈비였다. 나는 돼지양념갈비의 양념에 뭔가 색다른것이 들어갔다는 내 나름대로의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언니가 돼지양념갈비는 언니의 어머니가 하셨다고 했는데 아이를 키우는 언니가 뭔가 특별한 것을 넣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갑자기 옻이 생각났다. 어렸을때 시골의 숲에서 놀다가 옻이 올라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언니에게 밤이 늦었지만 정확한(?) 사태 파악을 위해서 전화를 걸었다. 언니가 잠에 취해서 언니의 남편분이 전화받았는데 나의 상황을 설명하니 언니를 깨워서 물어본다. 언니는 잠에 취해 있다가 간신히 옻에 대한 정보를 듣더니 "만둣국에 옻 7-8시간 끓인 것을 조금 넣었어."라고 하는 것이다. 알러지의 원인이 돼지양념갈비에서 비롯된 줄 알았는데 다른 것이 튀어나왔다. -언니는 그 후에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는데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응급실에 도착해서 응급실 간호사에게 문진 겸 건강정보 넘기고 조금 오래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었다. 응급실 의사는 "옻 먹었어요? 알러지 있는데?"라고 말하시는 것이다. 나는 "음식에 옻이 있는지 모르고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혹시 목이 붓거나 막히거나 하는 증상이 느껴지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목이 조금 불편하지만 그정도로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아요. 대신에 온 몸이 가려운데 등이 특히 심해요. 보여드릴까요?"라고 했다. 의사는 "괜찮아요. 옻은 증상이 다른 알러지보다 반응양상이 다양하고 심해질 수 있으니 오늘 주사맞고 외래나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기다린 시간보다 더 짧은 진료였다.


그리고 주사실이라고 쓰여진 입원실 간이 칸막이 같은 곳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주는 항생제와 알러지약을 맞았다. 주사를 다 맞자 간호사 선생님이 "밖에 나가서 수납하시고 약 받으시면 됩니다."라고 친절히 말씀해 주셔서 밖으로 나가서 수납을 했다. 수납을 하면서 기다리니 그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나오더니 약을 내게 건네주면서 "오늘 주사 맞으셨으니 내일 아침부터 약드시면 됩니다."라고 또 친절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응급실을 보고 시설이 많이 낡았구나라고 생각했다. 또한 응급실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내가 응급실에 갔을때는-친구가 가끔 아파서 응급실을 조금 다녀봤다- 사람이 많았었는데 여기는 조금 한산한 분위기였다. 다른 응급실에 방문했을때도 물론 처음부터 친절하진 않지만 문진하는 간호사가 불친절한 경우는-말투에서 느껴졌다. 나 지금 피곤하니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짜증낼거라는 느낌이었다- 처음이었다. 더욱 충격인것은 의사선생님은 정말 대충 진료를 본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내가 대충 진료를 볼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지 않고 연륜이 많으셔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응급실의 분위기는 축축 쳐지고 환자에게 별 관심없어 보였다. 진료 본 의사는 주사실로 가세요 하는데 주사실은 한 눈에 보이지 않았고 다른 간호사분들은 도란도란 건강식품이야기를 나누면서 누구하나 어디로 가라고 안내하지 않았다. 나를 주사실로 안내해 준 것은 의사선생님의 쭉 뻗은 한 팔이었다. 그래서일까? 주사를 놔주고 약을 건넸던 간호사 선생님이 유달리 친절하게 느껴졌다.

초반에는 그 응급실에서 기분이 축축 쳐지고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 그 간호사 선생님으로 인해서 그래도 괜찮은 분이 있는 병원이 되었다. 다행히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온 몸의 알러지가 다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주사가 효과가 좋다는 것을 느끼면서 더이상 가렵지 않아서 그렇게 잠을 청했다.

옻은 7-8시간 끓여서 조금 넣는다고 해도 한번 피부가 옻 알러지를 기억하면 조금만 먹는다고 해도 옻 알러지가 발현 된다고 한다. -도대체 언니의 아이들은 어떻게 그걸 먹고 괜찮을 수 있는지 미스터리하지만 역시 언니가 아이들 케어를 정말 신경쓰는구나하고 느꼈다. 다음에는 언니 집에서 무언가를 먹을때는 재료에 대한 철저한 검문을 하고 먹어야 겠다. 언니가 음식솜씨가 좋아서 또 먹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좋은 기억이 있으면 앞의 불친절함도 잊어진다는 마지막효과를 톡톡히 느꼈다. 그래서 인생 초반에 고생해도 인생 말년이 행복하면 힘들었지만 보람차고 행복했던 인생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마지막 기억이 행복할 수 있도록 오늘도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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