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계단을 내려오는데 바깥으로 나오는 문의 안쪽에 하얀 고양이가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점점 계단을 내려오자 고양이는 몸을 움찔 움찔 움직였다. 그렇게 조금씩 움직이더니 내가 자신에게 더 가까이 올 것을 예감했는지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회사 주변에 사는 길고양이인데 사람이 오면 눈치를 보면서 도망가버린다.
어느날은 다른 곳에 들렸다 오는 길에 회사 동료를 만났다. 회사 동료를 기쁜 마음에 부르는데 그 동료분 손에 구론산 작은병박스의 위가 살짝 찌그러진채로 들려있었다. 나는 그 분이 구론산을 몇 병 얻어온건가 싶어서 박스를 가리키면서 "그 안에 뭐가 들었어요?"라고 물어보았다. "이 안에 고양이 사료가 들어있어요. 회사에 고양이 사료가 떨어져서 고양이 사료를 샀는데 공장에 문제가 생겨서 결재가 취소되었어요. 그래서 사료 좀 얻으러 왔어요."라고 대답하면서 구론산박스를 꼭 쥐었다.
내가 듣기로는 이 분은 동물을 안 좋아한다. 그래서 결혼할때 조건으로 내건것이 종교 없을것, 동물 안 키울 것이라고 했다. 같이 결혼하신 분이 종교도 없고 동물도 안키워서 다행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동물 안 좋아하시잖아요? 그런데 고양이 밥은 왜 챙기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죠."라고 대답하셨다. 창고에 구론산 박스를 넣으면서 슬쩍 다른 물건의 뒤로 숨기기에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분이 다른 사람들이 고양이 밥을 퍼주기는 하는데 고양이 사료가 떨어져도 가져올 생각도 안하고 고양이 밥 주는 것만 좋아한다고 불만을 터트리면서 자기가 가져왔으니 자기가 줄거라고 하셨다.
길 고양이들은 동료분의 발소리가 들리면 멀리 있다가도 동료분의 지척 가까이 온다. 너무 붙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손을 뻗으면 충분히 도망갈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동료분이 사료를 주기까지 기다린다.길고양이들은 사람을 피한다. 사료를 준다고 해서 가까이 지내지 않는다. 동료는 동물을 싫어한다. 그런데 고양이 사료는 챙기고 있다. 난 그들을 보면서 이상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싫으면 다른데 가서 살면 되는데 그건 아니다. 동물이 싫다면서 동물의 밥을 왜 신경쓰는건가! -이게 가장 이해가 안됐다-

오묘한 고양이와 동료가 눈을 마주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동료가 고양이 사료를 주고 바로 먹이그릇 앞에서 비켜나고 고양이는 그것을 보고 먹이그릇 근처로 다가가면서 동료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양이의 눈에는 날카로움보다는 호의를 품은 눈을 담고 있었다-내가 느끼기에는- 동료가 "응, 어서 먹어."라고 말하면 고양이도 "야옹~"하고 살가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 동료는 미소짓는 얼굴로 고양이를 보다가 먹는 것을 보면 돌아서 간다.
그 모습을 보고 어쩌면 동료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원으로써 고양이를 보는 것이고 고양이도 동료를 먹이를 주는 고마운 사람정도로 생각해서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건가 싶었다. 나에게는 이상해 보이는 이 관계가 그들에게는 적당한 선을 지키며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그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선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을 지키면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선이 깨지는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선은 내가 그은 선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그은 선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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